
아름은 물병에서 대야에 물을 따르고 수건을 적셨다.
그리고 얼굴에 묻은 흙먼지를 조심스레 닦아 냈다.
머리를 정성껏 빗은 뒤, 잠시 손을 멈추었다.
검지손가락에 곱슬머리 한 가닥을 빙글 감아 보았다.
시커는 그녀의 곱슬머리를 정말 좋아했다.
침대 위에는 그녀가 가장 아끼는 드레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화려한 옷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드레스였다.
은목걸이에 걸린 반지가 손끝에 스치자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름은 다크랜드의 작은 집 바닥을 쓸고 있었다.
곧 어머니가 들에서 돌아오실 것이고,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준비한 뒤,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릴 예정이었다.
막 빗자루를 한쪽에 세워 두었을 때,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는 소박하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짙은 왕실 푸른색 망토를 걸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목에는 왕의 인장이 달린 가느다란 사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시크릿.
높은 곳에 거하는 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왕께서 당신을 순례자로 뵬라 땅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어린 여자아이일 뿐인데…
어떻게 혼자 뵬라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함께 갈 친구나 가족은 없습니까?”
시크릿이 물었다.
“저는 막내예요.”
아름이 대답했다.
“오빠들과 언니들은 오래전에 모두 떠났고,
부모님은 그들을 따라가기를 거절하셨어요.”
그녀는 치맛자락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제게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창밖을 바라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친구들도…
아무도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을 거예요.”
시크릿은 왕의 초대장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봉인에는 왕의 인장이 찍혀 있었고,
그 위에는 아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들어 작은 벨벳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안에는 검은 오닉스가 박힌 황금 반지가 들어 있었다.
분명 그녀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작은 손가락에는 너무나도 컸다.
시크릿이 미소 지었다.
“왕께서 당신과 함께 걸어갈 이를 보내실 것입니다.
그 반지는 그의 것입니다.”
아름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왕께 전해 주세요.
초대를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녀는 손바닥 위에서 반지를 천천히 굴려 보았다.
“그를 만나면…
이 반지를 건네드릴 거예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를 사랑할 거예요.”
그녀의 눈이 뜨겁게 빛났다.
“오직 그만을.”
시크릿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맹세를 증인이 되어 받아들이는 몸짓이었다.
그는 정교하게 장식된 작은 나무 상자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평안히 가십시오.
왕의 딸, 아름.”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아름은 미리 꺼내 두었던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시커를 처음 만났던 날 입고 있었던,
빨간색과 검은색 드레스였다.
목걸이를 머리 위로 넘겨 걸고,
반지를 가슴 가까이 드레스 안으로 넣었다.
이제 그 반지는 시커의 것이었다.
아직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
왕께서 주신 정교하게 조각된 향수 상자에서 향수를 살짝 손목에 찍었다.
달콤한 백합 향기가 방 안 가득 퍼져 나갔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머리를 한 번 더 빗으며
머리카락 한 올까지 가지런한지 확인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를 얼마나 오래 기다리게 했을까?
상관없었다.
그를 만나는 순간만큼은…
완벽해야 했다.
마침내 공동 거실로 들어서자,
시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아 주었다.
밀밭에서 처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미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