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커는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길을 나섰다.
이럴 때는 킨드가 늘 가장 옳은 말을 해 주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지도 벌써 일주일.
생각해 보면 더 일찍 찾아가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분명 킨드에게 한소리 들을 것이다.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잔뜩 흐려져 있었다.
시커는 좁은 길을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회색 드레스에 베일을 쓴 한 여인이 홀로 걷고 있었다.
그때 거친 사내 셋이 나타나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시커의 몸이 굳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그는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아름의 책에서 읽었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크리스티아나와 머시가 길 위에서 습격당했던 장면.
험상궂은 사내는 “너희를 영원히 여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협박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왕께서 구원자를 보내 주셨다.
이번에는 없었다.
그에게는 전도자도 없었다.
굿윌도.
해석자도.
그리고 그녀에게도 구원자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기뿐이었다.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사내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시커는 지팡이를 치켜든 채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온 힘을 실어 휘두른 일격이 가장 가까운 사내의 머리를 정확히 강타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는 돌처럼 쓰러졌다.
다른 사내 하나는 베일 쓴 여인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 있었다.
“이 꼬맹이부터 처리하고 나면 네 차례다.”
그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는 여인을 땅으로 밀쳐 버리고 시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시커는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사내는 그것을 막아 내더니 지팡이를 손에서 튕겨 냈다.
순간 우둔이와 맞섰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신은 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는 무기조차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뒤로 힘껏 당겼다가 온몸의 무게를 실어 내질렀다.
사내의 코가 그대로 주저앉으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시커는 몸을 숙여 떨어진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돌아섰을 때—
마지막 남은 사내는 이미 도망치고 있었다.
시커는 땅에 주저앉아 떨고 있는 젊은 여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아가씨…”
그녀는 천천히 베일을 벗었다.
헝클어진 검은 곱슬머리가 한꺼번에 흘러내렸다.
눈은 울어서 퉁퉁 부어 있었고,
얼굴은 눈물과 흙먼지로 엉망이었다.
“아름?”
엉망진창인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아름이었다.
아름은 벌떡 일어나 시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사랑해요, 시커.”
시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름의 눈에 번개가 번뜩였다.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이 바보!”
화를 내는 모습조차 너무 사랑스러웠다.
“언제부터였어요?”
시커가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