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은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옅은 서리가 땅 위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양들은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모닥불은 거의 꺼졌지만, 숯불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시커의 팔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아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조금 더 몸을 기댔다.
시커가 눈을 뜨고 미소 지었다.
아름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크고 갈색인 눈.
한없이 다정한 눈.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가볍게, 오래도록 입을 맞추었다.
시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눈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사랑해요.”
그가 말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왜 하필 그런 말을 해서 이 순간을 망치는 거지?
그녀는 약속했었다.
평생 단 한 사람에게만 사랑한다고 말하겠다고.
키스는 나중에 덧붙인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입 맞추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걸.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그녀는 시커를 사랑했다.
온 마음을 다해.
하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안 된다.
아직은 안 된다.
‘사랑해’라는 말은 영원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
어떤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시커도 그걸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녀의 마음쯤은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말을 직접 들어야만 믿을 수 있는 걸까?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뜨겁고 갑작스럽게.
하지만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가까스로 눌러 버렸다.
“언제부터였어요?”
겉으로는 차분하게 물었다.
하지만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당신이 벽을 넘었을 때요.”
시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날 속여서 그 말을 하게 했을 때요.”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랑해.”
아름은 눈을 감았다.
정말이지.
“사랑이 뭔지는 알아요?”
그녀가 따져 물었다.
“왜 나를 사랑하는지 이유를 전부 적어 보세요.”
잠시 머뭇거린 뒤 덧붙였다.
“한 달 후에 가져와요.”
그리고 조금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잠시 떨어져 있는 게 좋겠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하필 한 달이라고 말한 걸까?
한 달은 너무 길었다.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일주일이면 충분했을 텐데.
생각하기에는 그것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이건 전부 시커 때문이었다.
아름은 주먹을 꽉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차가운 회색 숯불 곁에 시커를 남겨 둔 채 걸어가 버렸다.
시커는 얼어붙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시선은 식어 버린 숯불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녀는 자신을 사랑한다.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떠나 버렸다.
한 달.
어쩌면 영원히.
눈이 따끔거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아 냈다.
절대로 흘러내리게 두지 않았다.
우는 건 애기들이나 하는 거니까.
그는 스스로 맹세했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절대로.
바로 그때 티르자가 천막에서 나왔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아직 여기 있었어요, 시커?”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아름 양은 어디 있어요?”
시커는 씁쓸하게 웃었다.
“완벽했던 밤을 내가 망쳐 버렸어요.”
그는 시선을 떨구었다.
“우스운 건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그녀는 떠났어요.”
티르자는 홱 돌아서더니 시커를 노려보았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요, 시커!”
그녀가 쏘아붙였다.
“아름 양은 시커를 사랑해요.”
“그건 모두가 알아요.”
잠시 뜸을 들인 뒤 덧붙였다.
“시커만 빼고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시커를 가리켰다.
“그 사람은 절대로 시커를 떠나지 않아요.”
“절대로요.”
하지만 시커의 마음은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했다.
티르자만큼 확신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