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커는 아름의 침상 곁에 무릎을 꿇고 젖은 수건을 그녀의 이마에 올려 주고 있었다. 사흘째 그녀는 그곳에 누운 채 신음하고 몸을 떨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결혼 준비를 하느라 자신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버린 것이었다. 아름이 힘겹게 눈을 뜨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오디세우스…” 그녀가 속삭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시커는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 “무리하지 마, 아름.”
“나… 해야…” 그녀가 힘없이 말했지만 끝까지 잇지 못했다.
“아름, 이제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시커가 말했다. “다 해 놓고 이렇게 몸까지 망가뜨렸잖아.”
“해야 할 일이었어.”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했겠어?”
“아니야, 아름. 너무 많은 걸 혼자 짊어졌어. 내가 말렸는데도 넌 듣지 않았잖아.”
아름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한테 뭘 경고하셨다는 거예요, 시커?”
“우리 부모님 말이야. 폭포까지 모시고 갈 필요는 없었어. 그 일 때문에 다 망쳐 버렸잖아.”
아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우리 결혼식이 싫으셨군요.”
“아니야, 아름. 싫었던 게 아니야. 내가 본 결혼식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어.”
“그런데도…” 그녀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넌 하품했잖아.” 그 장면이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어, 시커.” 그녀가 힘없이 속삭였다. “그렇다고…”
“그러니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아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배고파.”
“생선 스튜가 기다리고 있어.” 시커가 미소 지었다. “그런데 명랑 양이 도대체 어디서 생선을 구해 오셨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네.”
그녀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 방 안까지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집으로 갈 준비 됐어? 우리 집으로.”
아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커를 가까이 끌어당겨 깊이 입을 맞춘 뒤, 그를 침대 위로 끌어올렸다.
***
두 사람은 함께 좁은 길을 걸어 나섰다. 아름은 시커의 팔에 꼭 매달려 그의 힘에 몸을 의지했고, 시커는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을 어깨에 멘 가방 하나에 담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서두를 이유도, 급할 이유도 없었다. 이제 시간은 그들의 것이었다. 좁은 개울에 이르자 시커는 무릎을 꿇어 물통에 물을 채운 뒤 아름에게 건넸다. 아름은 목을 축일 만큼 마시고 다시 돌려주었다. 그러더니 신발을 벗고 개울로 들어가 첨벙거리며 건너가기 시작했다.
“아가, 다리가 있잖아!” 시커가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하지만 아름은 그저 까르르 웃기만 했다.
“안 깊어, 자기!” 그녀가 반대편 언덕에 오르며 대답했다.
시커는 어깨를 으쓱하고 신발을 벗은 뒤 바짓단을 걷어 올렸다. “네 짐을 물에 빠뜨려도 나 원망하지 마.” 그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실수로 말이야.”
시커는 물을 첨벙거리며 건넜다. 발걸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름은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가방을 떨어뜨리지 않을 테니까. 앞에는 백합이 드문드문 피어 있는 완만한 언덕이 이어졌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아름은 풀밭에 주저앉아 다리를 접었고, 시커도 가방을 내려놓고 그녀 곁에 앉았다.
시커의 얼굴에 잠시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다. 이곳 어딘가가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분명했다. 아름은 확신했다. 그는 언제나 너무 큰 기대를 품었고, 현실이 그 기대를 채워 주지 못할 때마다 깊이 실망하곤 했다. 자신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걸까?
아름은 가방에서 나무 그릇 하나를 꺼냈다. 안에는 숟가락이 함께 들어 있었다. 단단히 닫힌 뚜껑을 열자 진한 생선 스튜 냄새가 퍼졌고, 그녀는 큼직한 생선 조각 하나를 떠 올렸다.
“벌써 또 배고파, 아름?” 시커가 웃으며 물었다.
정말 바보 같기는. 생선 스튜는 배가 고파야만 먹는 게 아니잖아. 아름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웃었다. “한입 먹을래?”
시커는 코를 찡그렸다. “감히 네… 맛있는 스튜를 뺏어 먹을 순 없지.”
아름은 몇 숟갈 먹은 뒤 뚜껑을 다시 꼭 닫았다. 그리고 백합 한 송이를 꺾어 시커의 귀 뒤에 꽂아 주었다. 스튜를 안 먹겠다면 다른 방법으로 맛보게 해 주면 되지. 그녀는 몸을 기울여 시커에게 입을 맞추었다.
시커는 계곡 건너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을 가리켰다. 아름의 마음에 문득 그림자가 드리웠다. 외로워 보였다. 딱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름답기는 했지만, 그래도 외로웠다.
두 사람은 다시 길을 걸었다. 아름은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다. 시커는 아직도 머리에 꽂힌 백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덕 아래 오래된 비석 앞에 이르자 그녀의 미소는 사라졌다. 세월에 닳은 비석에는 뼈들이 매달려 있었고, 그녀는 걸음을 늦추어 새겨진 글을 읽었다.
“징그러워…” 그녀가 중얼거렸다. 단순한 이와 게으른 이와 추정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시커를 바라보니 그는 오히려 마음이 놓인 듯 보였다. 이상했다. 백합은 불편해하면서 뼈를 보면 안심하다니?
앞으로는 어려움의 언덕이 우뚝 솟아 있었다. 가파르고 메마른 바위길은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두려움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끊임없이 이끌고 있었다. 시커는 갈림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그를 향해 돌아섰을 때, 마음속 어딘가가 찢겨 나가는 듯했다. 자신의 일부가 언덕 아래에 남겨진 채 끝내 따라오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곡식 창고와 수레 곁을 지나자 그녀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기쁨으로 향하는 길 한쪽에는 오래된 건물이 서 있었다. 세월에 검게 그을린 들보와 빛을 잃은 구리 지붕. 낮게 울리는 기계 소리 사이로 낡은 나무가 삐걱거리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신 나올 것 같아…” 그녀가 속삭였다.
“내가 일하는 곳이야.” 시커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름의 마음이 저려 왔다. 자신을 위해 그가 그곳에서 보낸 날들.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을 위해 보내야 할 수많은 날들. 그 생각은 차마 견디기 어려웠다.
***
시커의 마음속에서 짜증이 서서히 치밀어 올랐다. 아름은 조용해졌고, 그는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것이 좋은 침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기쁨 마을을 가리켰을 때부터 그녀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그 뒤로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기분이 점점 더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리 위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춘 채 계곡의 폭포를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시커는 원래 자기 것이 되었어야 할 땅을 지나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계곡 위에 자리한 그 집은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살 수 없었을 만큼 훌륭했다. 아름은 분명 자신에게 실망한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 때문이겠는가?
두 사람은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걸어 마침내 자신들의 집 앞에 이르렀다. 시커의 가슴은 뿌듯함으로 벅차올랐다. 그래, 계곡가에 있는 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부지런한 이와 그의 아내 헌신한 이의 집 바로 옆에 집을 지었다. 어쩌면 헌신한 이가 아름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줄지도 몰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름을 안아 문지방을 넘어 들여보내려 했지만, 그녀는 코웃음을 치더니 스스로 문을 밀어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은 낮았고 굵은 들보가 드러나 있었다. 널찍한 마룻바닥을 밟을 때마다 발걸음 소리가 울렸고, 아직도 톱밥과 송진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한쪽 벽에는 거칠게 다듬은 돌벽난로가 튀어나와 있었고, 주전자를 걸 수 있는 쇠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시커는 그녀를 부엌으로 데려갔다. 새 회반죽과 석회 냄새가 아직 희미하게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조리대는 아무 장식 없는 나무였고, 한쪽에는 깊은 질그릇 개수대가 놓여 있었다.
침실은 작은 창문 하나만 있는 아담한 방이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덧문이 희미하게 삐걱거렸다. 흰 회칠을 한 벽에는 옷을 걸 나무못 하나만 외롭게 박혀 있었다.
시커의 책들은 거실 한쪽 벽에 가지런하지 않은 더미를 이루고 쌓여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집 안에 있는 유일한 가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긴 나무 소파였다. 황갈색 방석에는 붉은 점과 자주색 점이 줄지어 수놓아져 있었다. 시커는 활짝 웃으며 그것을 앞으로 끌어당겨 침대로 펼쳐지는 구조를 보여 주었다.
“어때, 아름?” 시커가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아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