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은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시커의 눈에는 그녀에게서 생기가 모두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피부는 창백했고, 눈빛에서는 그 반짝임이 사라져 있었다.
슬기가 밤마다 울면 아름은 젖을 물리려 애썼지만, 슬기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래서 시커는 젖을 조금 짜서 작은 그릇에 담고, 아주 작은 숟가락으로 슬기에게 먹였다. 아이가 겨우 다 먹고 잠이 들 즈음이면, 슬기는 다시 배가 고파 보채기 시작했다. 시커는 마지막으로 한 시간 넘게 이어서 잠을 잔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시커의 어머니는 일주일 동안 머물며 할 수 있는 일을 도왔지만, 곧 멸망의 도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 깊은 이도 허영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새로 태어난 조카를 만나고 떠났다.
“아름, 자기야.” 시커가 부드럽게 권했다. “조금이라도 일어나서 걸어 봐. 천천히.” 그러고는 슬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잘 지켜 드려, 우리 슬기. 아빠는 너희 둘을 위해 다시 일하러 가야 해.”
시커는 하품을 하며 눈을 비비고는 방앗간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넜다. 이렇게까지 지쳐 본 적은 없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지 벌써 이 주가 넘었다. 밀려 있을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방앗간에 도착하자 한 젊은 여인이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등까지 느슨하게 흘러내리는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카락. 허리를 감싸는 옷차림에 드러난 어깨. 그녀에게서는 정향과 오렌지가 섞인 포맨더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시커는 무심코 눈을 깜빡였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시커.” 그녀가 새벽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시커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이미 허리를 자연스럽게 흔들며 앞서 걷고 있었다. “전 안락의 언니예요.” 그녀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아버지께서 시커를 뵙고 싶어 하세요.”
야발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그녀는 노크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우아하게 안으로 들어섰고, 시커는 그 뒤를 따랐다. “아버지, 말씀하신 시커를 모셔왔어요.” 그녀는 우아하게 인사한 뒤 달콤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대신 소파로 미끄러지듯 걸어가 단정히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앉아 반짝이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 그래. 시커.” 야발이 그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딸 곁에 앉더니 빈 안락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앉게.”
“시가 하나 하겠나?” 그가 은빛 케이스를 펼치며 물었다.
시커는 손을 들어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야발은 작은 커터로 끝을 자르고, 성냥을 그어 시가 끝을 천천히 달군 뒤 두어 모금 빨았다. 가느다란 연기가 천천히 위로 피어올랐다.
“말해 보게, 시커. 자네가 내 밑에서 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이었다. “안락이 그러더군. 자네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성실한 일꾼이라고. 내가 뭐라고 약속했었지? 기갈에서는….”
“기쁨이죠.” 딸이 비단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바로잡았다.
“그래. 기쁨에서는.” 야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다네.”
“맞습니다.” 시커가 대답했다. “전 제가 꿈꾸던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자네 재능을 그런 곳에서 썩히기엔 아깝군. 자네에게는 주도성이 있어. 추진력도 있고. 그런 사람을 답차에만 세워 둘 순 없지.”
시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부로 자네는 현장 감독이네. 매혹이 자네를 도울 걸세.”
매혹은 시커를 향해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무엇이든 필요하시면 제가 곁에 있을게요.”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게.”
현장 감독이라고? 이제 더는 답차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고? 시커는 자세를 바로잡았다가 이내 벌떡 일어섰다. 믿기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아름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문턱을 나설 때까지도 정향 향기가 공기 속에 은은히 남아 있었다.

